*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입니다. 아이러브 스쿨에 있던 자료 입니다.
토마스 머턴의 “禪과猛禽” 중에서
몇 년 전에 아는 분이 한번 읽어 보라기에 온 곳을 다 찾아도 구할 곳이 없어 하는 수없이 전자책을 구해 한번 읽어보았습니다. 읽으면서 메모해둔 것 여과 없이 마구잡이로 몇 자 적어놓은 것 올립니다.
“참된 봄은 봄이 없을 때 일어난다.” -신회_
“내가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은 하느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과 같은 것이다.” -에카르트-
“내가 아내를 바라보는 눈은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과 같은 것이다” -나그네-
“만약 나의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수하고 단순해 질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행복은 있을 수 없으리라 -니시다-
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. -갈라 2,20-
*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(십자가에 못 박힘)과 영광(부활과 승천)에 들어가듯이 불교신자도 부처의 자기 비움과 깨달음에 들어간다. 이 둘의 중요한 차이점은 전자가 신학적이며 인격적인데 반해 후자는 실존적이며 존재론적이라는 점이다. 그러나 여기에서의 ‘인격’은 ‘개별적이며 경험적인 자아’와는 구별되어야 한다.
*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가?
*환시와 황홀감과 모든 형태의 특별한 체험
*내가 善을 행하려 할 때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. 나는 내 마음 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.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속에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.
*허위, 부서짐, 고집스러운 망상, 가치의 죄스러운 왜곡 등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.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?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. -로마 7,21-25-
*내면으로 반향 하는 심미적 가난
*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강생을 표현한 종교인 반면, 禪 은 신적 존재에 대한 강렬하고 내면적인 깨달음이다. 일본인들은 신적 존재를 무로 이해했지만 이 존재는 강생의 표현에 의해 보충되고 고양되고 보완되어야 한다. _니시다-
*인간의 삶의 가치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. 業 때문에 속박 받는다는 의식과 고통이 없는 곳에는 영적체험을 얻고 그리하여 구별이 없는 영역에 도달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. 우리가 고통 받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.
*우리가 명상에 의해 신체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마음에도 통달하지 못 할 것이다. 신체에 통달한다면 마음에도 통달할 것이다. 마음의 작용은 신체의 작용을 완전히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에게만 명백해 질 것이므로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신체의 작용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한다.
*“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
모든 선한 일을 하며
마음을 완전히 깨끗이 하는 것
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.“ -법구경-
*성 베드로는 ‘우리는 모든 것을 버렸다’ 고 말한다.
성 야고보는 ‘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’ 고 말한다.
성 요한은 ‘우리에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’고 말한다.
이에 대해 에카르트 수사는 우리가 언제 모든 것을 버리느냐고 묻는다.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,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, 들리는 모든 것, 보이는 모던 것을 버릴 때 그 때에만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.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우리는 빛으로 흘러넘치게 되고 하느님과 함께 빛나게 된다.
*올해의 가난에는 송곳 하나 세울 땅마져 없다 -향엄선사-
*마음은 녹아버리고 갈망은 끝났다.
*완전히 죽은 사람이 하느님을 가장 많이 차지한다.
*살아있는 동안 죽어라
완전히 죽어라
그러면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이 다 좋아진다. -무난선사-
*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사람은 진실로 은자가 아니며 다른 이를 슬프게 하는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다.
* 道 가 무엇입니까?
그것은 우리의 平常心 이다.
우리의 평상심이 무엇입니까?
피곤하면 잠자고 배고프면 먹는다.
*내가 선을 이해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, 물은 물일 따름이었다.
내가 선에 입문했을 때 산은 이제 산이 아니고 물은 이제 물이 아니었다.
그러나 내가 선을 이해하자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일 따름이었다.
2008 추석 전날
*서양에 서는 동양의 불교 또는 禪이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만이 존재하고 한국의 불교와 선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. 국력이 약한 탓도 있지만 한국 불교계에서 일본의 스즈키같은 훌륭한 학자가 없는 탓도 있으리라고 본다. 요즈음은 숭산 같은 분이 나와서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, 아직도 미흡하다고 생각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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