마음에 남는글

김광균의 설야

nagne109 2011. 2. 27. 07:43

▷ 설 야  / 김 광 균 ◁

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

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


처마끝에 호롱불 야위어가며

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


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

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


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

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


희미한 눈발

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

싸늘한 추회(追悔)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.


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

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

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

내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.



<시집 [와사등](1939)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