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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스크랩] 정좌처차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

nagne109 2010. 4. 30. 18:15

    정좌처차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
  
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

차실의 주련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이 시는 필자가 좋아하는 차시(茶詩) 중의 하나이다.
한시는 해석하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 질 수 있으나,
이 시처럼 100사람이 번역을 하면 100사람이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.

보통 이 시를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
내가 배운 바로는 중국 송(宋)나라 때 시인 산곡(山谷) 황정견(黃庭堅)의
『산곡문집』에 나와 있는 것으로 추사 선생이 즐겨 글씨로 쓰셨을 따름이다.

황정견(黃庭堅, 1045-1105)은 자는 노직(魯直), 호는 산곡(山谷)으로
홍주(洪州:江西省) 분녕(分寧:修水縣) 출생으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았으며,
스승인 소식(蘇軾:東坡)과 나란히 송대(宋代)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.
그의 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녔으며,
학식에 의한 전고(典故)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(措辭)를 특색으로 한다.
강서파(江西派)의 시조로 꼽히며, 『예장 황선생문집(豫章黃先生文集)』30권이 있다.

반취 선생은 『소설 한국의 차문화』에서,
茶半香初는 그 뜻을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.
'차는 반쯤인데 향기는 처음과 같네' 정도로 읽는 사람도 있고,
'차가 익기 시작하니 향기 피어나네' 로도 해석한다.
뒤의 해석이 제법 부드럽게 다가온다.' 라고 하며,
'고요한 자리 차 반쯤 익으니 향기 피어나네
시간도 멎은 곳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' 로 번역하였다.

유홍준 교수는 『완당평전』에서
'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,
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' 라고 하였다.

그 외에도 여러 측면으로 번역되고 있다.

'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절반인데 향은 처음 그대로다
묘하게 쓰는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'

'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를 반 넘게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
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'

'고요한 좌선실에 차 맛은 반잔의 맛, 향기는 첫 향기,
묘용을 쓰는 시간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나니'

필자가 배운 바로는 靜坐處는 고요히 앉아있는 곳 즉 좌선하는 것을 뜻하고,
半은 半日의 준말이다.
妙用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 씀을 이야기한다. 따라서 직역(直譯)하면,
'고요히 앉아 차 한잔 마시고 반나절이 지났는데 그 향은 처음과 같고,
묘한 마음을 쓸 때는 물 흐르듯이 꽃 피듯이 한다' 와 같고, 의역(意譯)하면
'공부 할 때는 처음과 끝이 같게 하고
깨친 사람의 일상생활은 물 흐르고 꽃 피듯 한다' 가 된다.

우리말로 된 시도 작가의 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
하물며 한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.

우리 차인들은 차가 기호 음료인 관계로
내가 선호하고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차가 있을 수 있으나
차가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자.
그래서 우리는 누구 번역이 '옳다', '그르다'라고 평하기 보다
'저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구나', '저것이 더 멋스럽구나',
'저것은 새로운 시도이다' 라는 생각을 할 지언정,
자신의 생각을 미리 머리에 넣고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을 배척하는 습관을 버리고,
우리 모두 여러 사람의 번역을 많이 읽고 각자의 장점을 생각해가며
원 작자의 뜻에 가까운 것을 찾도록 노력해 보자.

- 대청불교 제23호(2003. 4. 25), 金川 오상룡
 
 

출처 : 오직 차 마시는 일에 힘쓰자
글쓴이 : 금천재 오상룡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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